
광장일보 이현나 기자 | 천연염색가이자 농학박사인 전흥자 작가는 닥나무 한지와 식물 염료에 대한 오랜 연구를 기반으로, 자연이 품어온 색을 현대의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에게 색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식물과 땅이 켜켜이 쌓아온 시간의 흔적이자 자연이 남긴 기록 그 자체이다.
전흥자 작가는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북분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곁에서 자연스레 염색 과정을 지켜보며 자라왔다.
이러한 경험은 작가의 작업 세계에 깊이 자리하며, 자연에서 얻은 색을 삶과 예술 속에 구현하는 근원적인 토대가 됐다.
전통의 맥을 일상 속에서 체득한 작가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색의 지혜를 현대적 시각으로 확장하며 작업을 발전시켜 왔다.
이번 개인전 '식물의 언어, 색의 기억' 은 작가의 연구와 삶, 그리고 지역성과 자연성이 응축된 작업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이다.
전시는 양양군 자생식물을 중심으로 염재를 구성하고, 명주·삼배·모시·광목 등 전통 섬유에 물들이는 과정을 통해 지역의 생태적 특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식물이 지닌 색의 층위는 계절의 변화, 토양의 숨결, 햇빛의 궤적을 머금은 자연의 기억으로서 섬유 속에 스며든다.
작가는 이러한 색의 기록을 직조하며,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자연의 언어와 시간을 다시 불러낸다.
전시는 ‘기억됨’과 ‘잊혀짐’ 사이의 경계에 놓인 미묘한 순간을 탐색하며, 식물의 색이 가진 조용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시각적·정서적으로 전달한다.
이를 통해 자연의 색채가 지닌 예술적·문화적 가치와, 지역에서 이어져 온 전통기술의 의미를 다시금 조명 한다.
'식물의 언어, 색의 기억' 은 자연과 인간, 시간과 기억을 잇는 전흥자 작가의 독보적인 작업 세계를 선보이는 전시이자, 양양의 자연이 간직해온 색의 정신과 가능성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