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장일보 주재영 기자 |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의 중요 신호 중 하나인 ‘렘수면 행동장애’는 잠을 자면서 발차기, 고함 등 심한 잠꼬대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렘수면 행동장애 동반 유무에 따라 파킨슨병 환자의 장내 미생물 변화 양상이 다르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정선주·조성양 교수팀은 파킨슨병 진단 전 렘수면 행동장애를 경험한 환자는 초기부터 장내 환경이 악화되어 있던 반면, 진단 전 렘수면 행동장애가 없던 환자는 초기에 균형적인 장내 환경을 보였으나 진단 2년 후부터는 렘수면 행동장애 동반 환자군과 유사하게 변화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번 연구는 파킨슨병 환자의 장내 환경을 분석해 파킨슨병의 경과 예측과 맞춤형 치료 전략 개발을 위한 새로운 근거를 제시한 데 의의가 있다.
파킨슨병은 도파민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 알파시누클레인이 뇌에 비정상적으로 축적돼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퇴행성 뇌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단백질 응집이 뇌보다 장 신경계나 말초신경에서 먼저 나타났다는 사례들이 확인되면서, 발병 경로에 따라 ▲뇌-우선형(뇌에서 시작)과 ▲장-우선형(장이나 말초신경계에서 시작되어 뇌로 신호 전달)으로 구분하고 있다.

뇌-우선형 환자는 렘수면 행동장애가 늦게 나타나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는 반면, 장-우선형 환자는 파킨슨병보다 렘수면 행동장애가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파킨슨병 환자와 렘수면 행동장애 환자의 장내 미생물 변화가 유사하다는 사실이 보고된 바 있으나, 파킨슨병의 발병 경로에 따른 장내 환경의 차이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정선주·조성양 교수팀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받은 파킨슨병 환자 104명과 대조군 85명을 모집해 렘수면 행동장애의 유무와 질병 진행 단계에 따른 장내 미생물 변화를 비교·분석했다.
파킨슨병 환자 104명 중 57명은 파킨슨병 진단 전 렘수면 행동장애를 경험한 환자이고, 47명은 파킨슨병 진단 전 렘수면 행동장애가 없던 환자다. 대조군 85명은 파킨슨병 환자의 배우자를 모집해 생활 습관이 비슷한 조건에서 비교했다.
그 결과, 파킨슨병 진단 전 렘수면 행동장애를 경험한 환자는 질병 초기부터 장 점액층을 분해하고 장 내 세균막을 형성하는 아커맨시아(Akkermansia)와 에쉬리키아(Escherichia) 등 유해균의 비율이 높았다. 장벽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유전자 발현은 유의하게 감소해 해로운 세균이 장벽에 부착되고 염증이 유발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고, 병이 진행돼도 변화 폭이 거의 없었다.
반면 렘수면 행동장애가 없던 파킨슨병 환자는 진단 초기에 건강한 대조군과 마찬가지로 장 점막 보호를 도와주는 프레보텔라(Prevotella), 파칼리박테리움(Faecalibacterium) 등 섬유질 관련 유익균이 풍부했다. 그러나 진단 2년 후에는 장내 미생물 구성이 렘수면 행동장애 동반 환자군과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연구 대상자들의 하루 식이섬유 섭취량은 일반 권장량(25g)을 초과한 34~36g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내 세균 불균형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식이 조절만으로 장내 미생물 균형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선주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국내 파킨슨병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파킨슨병은 초기 증상이 일반적인 노화 과정과 유사해 발견이 어려운데, 이번 연구를 통해 장내 미생물이 파킨슨병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조성양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렘수면 행동장애 유무에 따라 장내 미생물 구성 변화는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렘수면 행동장애를 경험한 파킨슨병 환자의 장내 미생물 환경에 주목하고 맞춤형 치료 전략을 개발하면 환자들의 삶의 질 유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국제 학술지인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피인용지수 12.7)’에 최근 게재됐다.